한국 미용의 역사(2)

2022. 10. 29. 00:28미용학

근대와 현대 미용의 역사는 근대 개화기에 들어온 미용법이 주로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조선 근대에는 흥선대원군의 쇄국 정치에 실패 후, 일본을 통해 서양의 문물과 사상이 인입됐으며 광복 이후까지의 미용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시대적 사건으로는 1895년의 단발령은 우리나라의 머리형에 일대 혁신을 가져왔다. 또한 서구 문화 유입과 함께 일본의 문호가 개방되고 국외 유학생과 신여성들에 의해서 한국의 근대, 개화기 시대 미용은 급진적으로 발전하게 된다.

근대 개화기는 1876년부터 광복 전으로 나뉜다.

1876년의 강화도 조약에 의한 개항으로 서양의 문물과 화장품, 일본 화장품 등이 유입되었으며, 신여성들 사이에서는 퐁파두르 스타일이 유행하였다. 퐁파두르 스타일이란 퐁파두르 후작 부인의 스타일로 프랑스 복식의 완성기인 1750년에서 1760년대의 프랑스 여성의 전형적인 로코코 방식의 스타일을 말한다. 또한 한류의 원조, 전설의 무희라고 불리는 최승희는 단발머리를 시도하여 단발머리가 유행하기도 하였다. 이 단발 보브컷은 신여성의 상징이었으며, 이전과는 다른 여성의 주체적인 사상을 나타내는 하나의 큰 상징이 되기도 하였다. 1920년대에는 국외의 유학생과 신여성들이 유행을 주도하였으며, 이숙종의 높은 머리(다카 머리)와 김활란과 최승희의 단발머리가 유행하였다. 1922년대에 들어서는 흰 피부를 위한 '박가분'이 출시되기도 하였으나, 납 성분으로 인해 납중독 부작용이 큰 문제가 되었다. 이 후 이러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서가분'이라는 화장품이 재출시되었다. 1933년에 화신백화점 내에 오엽주의 미용실이 개업했으며, 한국 최초의 파마머리를 선보이기도 하였다. 핀컬 파마와 숙발이라는 파마가 등장하여 유행하기도 하였다. 오엽주는 영화배우를 지망하다가 방향을 틀어 미용으로 관심을 돌렸으며,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여러 가지 미용 스타일을 배워온 뒤 화신백화점 내에 미용업을 시작하였다. 화려한 옷차림과 하이힐, 독보적인 스타일로 돈을 아끼지 않았으며 가는 곳마다 화려함을 남겨 장안의 화제가 될 만큼 당시 미용과 스타일로서는 여성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이러한 여파로 1937년에 최초의 파마머리를 선보였으며, 전기로 머리를 지진다 하여 '전발'이라고도 불렸다. 당시 가격은 5원으로 금가락지 하나의 가격이었으나 부유층 여성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이 파마머리는 여성들에게 유행의 대상이었으며, 오엽주는 한국 미용에 한 획을 그었다 할 정도로 영향력이 큰 인물이었다. 오엽주의 파마머리와 함께 유행했던 스타일은 한국 여성들의 의식구조를 바꿔놓을 정도로 획기적이었다. 또한, 현대무용가 최승희가 선두 주자였던 단발 보브컷은 조선 시대의 고정적인 여성의 이미지를 탈피하는 시도였다. 오엽주의 미용실은 유명세를 치르며 많은 외국 영화배우를 모방한 스타일이 유행하였다. 일제 강점기 말, 파마머리가 금지되었었으나 광복 이후 파마머리와 단발머리가 다시 유행하기 시작했으며, 일제 화장품들은 자취를 감추고 미국의 미용, 스타일링 방식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1940년대에는 퍼머넌트 웨이브, 세팅, 아이롱으로 멋을 내는 스타일이 유행하였으며 1948년 10월에는 제1회 미용사 자격시험 합격자가 발표되었다. 미용사 자격시험이 신설되고 한국미용의 전문적인 과정이 신설되었으나 이후 국내 화장품이 생산되었으나 원료 부족 등으로 인해 일반인들의 구입이 어려워졌다. 이 시기 TV가 들어오게 되며 서양 매체를 접한 한국인들은 서양의 헤어스타일을 많이 따라 하기 시작했으며, 파마머리의 경우 단순한 웨이브가 아니라 단발 보브컷의 스타일에서 파생된 스타일의 종류가 상당히 많았다. 이후 국내 화장품이 생산되었으나 원료 부족 등으로 인해 일반인들의 구입이 어려워졌다. 6.25 전쟁 이후 1950년대에는 외국 기술이 도입되면서 화장품 산업이 성숙기를 맞이하였다. 1950년대에는 오드리 헵번의 짧은 머리 스타일과 세실 커트(Cecile cut)가 유행하였다. 그리고 권정희 선생에 의해 우리나라 최초의 정화 미용 고등기술학교가 설립되었으며, 전문적으로 미용 기술을 가르치는 기관도 생겨났다. 정화 고등기술학교는 현재 정화예술대학으로 이름을 변경하였으며 사립 전공대학이다. 1951년에 한국 근대 미용 기술 발전에 이바지한 권정희 여사가 전문 미용인 양성과 미용산업계를 능동적으로 대처해나갈 직업인 육성을 위해 정화 미용 고등기술학교를 설립한 것이 시초이다. 이후 2008년 정화예술대학으로 개편되었고 2015년 정화예술대학교로 교명을 변경하였다. 이처럼 미용에 대한 관심도가 급진적으로 올라갔으며, 전문적인 미용인을 육성시키고자 하였다. 이후 한국 전쟁을 겪은 여성들은 박탈당했던 아름다움을 되찾고, 자신의 의견과 주장을 펼치는 데에 주저함이 없었다. 흰 피부를 향한 선호도가 높아져 선크림과 깨끗한 피부표현을 위한 화장품들이 대거 등장하였다. 1950년대에 화장과 미용에 대해 지식이 부족했던 당시에는 할리우드 영화가 기본 교과서가 되었다. 영화산업의 호황으로 외국 배우의 스타일을 모방하였으며 이때가 한국의 미용, 화장품 메이크업의 태동기라고 할 수 있다. 매체의 발달로 길고 얇은 아치형 눈썹, 흰 피부, 새빨간 입술로 서구적인 메이크업을 따라 하기도 하였다. 또한 미용 관련 학교와 학원이 등장하였으며, 다양한 기술 및 제품으로 다양한 스타일이 공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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